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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궤도를 이탈한 꼼수가 아닌, 빡빡하고 힘들지만, 하나님 훈련의 장 안에서 정도를 걸어갈 때, 하나님이 지켜보시고 그 길을 내시는 은혜와 승리의 삶 살게 하소서> 본문

어머니를 기리며/<새벽기도말씀>

<하나님의 궤도를 이탈한 꼼수가 아닌, 빡빡하고 힘들지만, 하나님 훈련의 장 안에서 정도를 걸어갈 때, 하나님이 지켜보시고 그 길을 내시는 은혜와 승리의 삶 살게 하소서>

더시스템 2022. 3. 28.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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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궤도를 이탈한 꼼수가 아닌,
빡빡하고 힘들지만, 하나님 훈련의 장 안에서 정도를 걸어갈 때,
하나님이 지켜보시고 그 길을 내시는 은혜와 승리의 삶 살게 하소서>
언젠가부터 우리사회에는 꼼수라는 말이 보편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넷방송에서 시작된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시작 돼서.
꼼수라는 말이 여기서도 편법을 일컫는 말, 정도의 길을 가지 아니하고 좀 다른 길을 가는 그것을 꼼수라고 하는데, 그것이 오늘 우리사회를 특징짓는 하나의 단어가 되었습니다. 좋은 길이 있고 편안한 길이 있고 조금만 생각을 굽혀버리면 그냥 편하게 살 수 있는 데, 굳이 정도로 갈 필요가 있겠느냐 하는 생각을 나타내는 말이 꼼수라는 말입니다.
우리사회는, 자신은 편법을 일삼고 또 흔히들 말하는 이 꼼수 가운데 살고 있지만, 그러나 타인은, 특히 지도자는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이상한 이중적 잣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윗은 오늘본문에 보면 이제까지는 정도를 걸어왔던 사람입니다. 지금까지는 정말 힘들고 어렵고 정말 이 길을 걸어가기가 너무 고통스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정도를 성실하게 잘 걸어왔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보면 이 정도의 길을 벗어나서 편법으로 길을 잠시 이탈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다윗의 입장에서 보면, 지금까지의 길은 고생이고 참 괴롭고 어려운 가시밭길 같은 그런 삶이었습니다. 하지만 좀 더 거시적으로 입장을 넓혀서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사울같이 훈련되지 아니한 사람을 왕으로 세워서 온 나라가 힘들고 온 나라가 영적지도를 받지 못한 상황에서, 하나님은 이제 그 다음 지도자를 세우는데 있어서는, 제대로 훈련된 사람을 세우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좀 제대로 훈련시키기 위해서 다윗을 광야로 모셨고, 그 광야에서 하나님의 훈련방식대로 정도로 재대로 훈련시켜가고 있습니다. 때로는 좀 가혹해보일수도 있고 때로는 좀 힘겨워 보일수도 있고, 때로는 너무한다 싶을 정도로 사람을 코너로 몰아가시는 그런 부분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은 하나님이 정하신 정도의 길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이 다윗이 생각할 때는 이제 언제까지 이 사울의 추격을 피해서 내가 도망 다녀야 되느냐? 24,25,26장을 통해서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려 보내주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제 이게 사울은 더 이상 그런 무모한 짓을 할 거 같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사울은 갈수록 더욱 기세등등해져서 분명히 다윗을 죽이려고 더 혈기왕성하게 그에게 다가올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의 마음에는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언제까지 이 생활을 할 수 있을 건가? 언제까지 내가 이 길을 피해 다니기만 할 것인가? 광야에 있다가 그 길이 들통 나면 사람들은 자기 왕인 사울에게 다윗을 고발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사울은 또 그를 쫓아올 것이고, 그때마다 피해 다니는 것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정말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좀 안정을 찾고 싶다는 생각, 이제는 좀 안정되고 싶다는 생각이 갑자기 그의 마음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안정이라는 것이 영원한 안정이 아니라 일시적 안정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일시적이지만 안전한 쪽, 편안하게 쉬고 싶다는 그런 생각이 그에게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그가 편법을 찾아낸 것 소위 꼼수라고 하는 하나의 수를 찾아낸 것이 바로 블레셋이었습니다. 그가 옛날에 블레셋의 골리앗을 죽였던 그 블레셋으로 자기가 직접 제 발로 찾아갔습니다.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갔습니다. 이제 그곳에서 나를 좀 거두어주시오 하고 들어갔습니다.
사람들이 다윗이 블레셋으로 갔다는 것을 사울에게 알려주었을 때 사울이 그를 쫓는 것을 그쳤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의 편법이 그의 꼼수가 성공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일시적으로 안정을 찾아서 갔지만, 그러나 하나남의 입장에서 거시적인 입장에서 보면 궤도 이탈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훈련방식에서 잠시 길을 떠나고 이탈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레이더에서 스스로는 사라졌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지켜보고 있을 뿐, 어쨌든 하나님의 훈련의 궤도에서는 이탈했습니다.
하나님의 훈련궤도에서 이탈하고 난 다윗은 이제 스스로 살 길을 도모해야 했습니다. 그를 보살펴주는 아기스에게 뭔가 보답해야 되겠다는 마음에 심한 심적 부담을 느낍니다. 나를 1년 4개월 동안이나 이렇게 거두어주고 보살펴주고 시글락이라는 성을 주어서 살게끔 해줬는데 내가 그에게 무언가 보답해야 되지 않겠나? 그래서 그는 또 하나의 수를 쓰게 됩니다.
바로 아말렉 사람들을 진멸하게 되었는데 실제는 아말렉 사람들과 싸워서 그들을 진멸하지만, 그러나 아기스에게는 이스라엘 사람들과 싸워서 그들을 전멸시켰다고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블레셋에게 영원한 원수, 또 이스라엘에게 영원한 원수인 블레셋,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영원한 앙숙관계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던 다윗은, 아기스에게서 살아남고 그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실제로는 아말렉을 진멸했지만, 사실은 아말렉을 진멸했지만, 그러나 거짓으로 이스라엘을 진멸했다고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본문 8절을 제가 읽고 9절은 여러분이 읽고 10절은 함께 읽겠습니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올라가서 그술 사람과 기르스 사람과 아말렉 사람을 침노하였으니 그들은 옛적부터 술과 애굽 땅으로 지나가는 지방의 주민이라 다윗이 그 땅을 쳐서 남녀를 살려두지 아니하고 양과 소와 나귀와 낙타와 의복을 빼앗아 가지고 돌아와 아기스에게 이르매
아기스가 이르되 너희가 오늘은 누구를 침노하였느냐 하니 다윗이 이르되 유다 네겝과 여라무엘 사람의 네겝과 겐 사람의 네겝이니이다 하였더라
오늘 본문에서 보는 것처럼 하나님의 길, 훈련의 정도를 벗어난 다윗은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서, 가드 왕 아기스에게 이렇게 생명의 부지를 위해서, 또 어쨌든 그에게 보답하기 위해서 또 다른 수 또 다른 편법 또 다른 꼼수를 쓰고 있습니다.
오늘 이것이 우리의 삶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있지 않습니까? 길을 이탈하고 궤도를 이탈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 삶의 방식을 조금 틀어서 다른 길로 가게 될 때, 우리는 또 다른 자기의 수에 빠져들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가나안땅에 거하게 하셨는데 아브라함은 그 가나안땅의 기근이 드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궤도이탈입니다. 그 가나안 땅에 가서 스스로 또 살아남기 위해서 자기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속입니다. 하나님의 궤도를 이탈한 꼼수가 또 다른 꼼수를 부르고 그래서 스스로는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완전히 꼬이게 되는 이상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다윗 또한 그러한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거짓이 또 다른 거짓을 부르고, 편법이 또 다른 편법을 부르는 이상한 상황, 어렵지만 광야에서 살아갈 때, 힘들지만 광야에서 그 모든 일을 견디며 살아갈 때, 하나님은 그를 보호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울의 그런 추격에서도 벗어나게 하셨고, 어쨌든 하나님은 다윗을 살려주셨습니다.
힘들지만 하나님의 레이더에 있을 때, 힘들지만 훈련의 장에 있을 때, 하나님은 그를 보호하셨지만, 그러나 내가 안정을 찾고 싶다고 그 길을 떠났을 때, 이제는 스스로를 지켜야 된다는 부담감, 그 부담감 때문에 도 다른 수를 쓰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우리 삶이 많이 빡빡하고 힘들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훈련 가운데 있다면 그 길을 올곧게 지켜나가시기를 바랍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있고 그곳에서 또 다른 은혜를 맛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적인 길을 찾기 시작하면 안정을 쫓아서만 살아가기 시작한다면, 그러나 그곳에선 내가 그 길을 끝까지 살아가야 한다는 그런 부담감이 우리 삶에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삶의 한계가 분명하지 많습니까?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잘 기억하시고, 오늘 하루도 우리가 광야 길을 살아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궤도를 이탈하지 마시고, 빡빡하고 힘들지만 하나님 은혜 안에서, 하나님이 그 길을 내시는 그 길을 따라서 승리하며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 살아가는 삶이 훈련의 연속이며, 때로는 안정을 찾고 싶고, 때로는 이 길을 벗어나고 싶을 유혹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길을 떠나 버리면, 또 다른 수로 또 다른 편법으로 우리가 사탄의 그 길을 가야된다는 것을 기억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다윗이 안정을 찾고 싶어서 블레셋으로 내려갔을 때, 그 곳에서 또 다른 안정을 위해서 또 다른 거짓을 일삼을 수밖에 없었음을 우리가 봅니다. 악은 악을 낳고 거짓은 거짓을 낳음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시고, 우리가 힘들지만 광야의 길을 걸어갈 때,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그런 은혜의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이 눈길을 헤치며 하나님 앞에 간절한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이 기도 가운데 하나님 함께 하여주시고, 오늘 이 귀한 발걸음 가운데 하나님께서 역사하여 주셔서, 우리의 간절한 아룀이 하나님 앞에 상달되게 하시고, 우리 자신을 위한 기도, 가정의 간절한 소망을 아뢰는 기도, 우리교회와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는 모든 눈물을 하나님께서 귀하게 받아 응답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삶이 하나님 앞에 향기 되게 하시고, 우리 삶이 하나님 앞에 거룩한 제물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2012년 2월 1일 수요일 새벽기도회/ 사무엘상 27장 설교말씀)

 

2012년 2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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