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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과의 소통에 앞서, 하나님과의 소통, 하나님과의 내면의 교통을 이루어 가는 참된 신앙인 되게 하시고, 우리내면에 말씀하시는 하나님 음성을 잘 들음으로써마음의 작은 찔림에도 즉.. 본문

어머니를 기리며/<새벽기도말씀>

<사람들과의 소통에 앞서, 하나님과의 소통, 하나님과의 내면의 교통을 이루어 가는 참된 신앙인 되게 하시고, 우리내면에 말씀하시는 하나님 음성을 잘 들음으로써마음의 작은 찔림에도 즉..

더시스템 2022. 3. 27.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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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과의 소통에 앞서, 하나님과의 소통,
하나님과의 내면의 교통을 이루어 가는 참된 신앙인 되게 하시고,
우리내면에 말씀하시는 하나님 음성을 잘 들음으로써
마음의 작은 찔림에도 즉시 나를 고쳐 큰 문제를 막는
신선하고 탁월한 영성의 소유자로 자라가게 하소서>
사람들의 말에 귀를 잘 기울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쁘게 표현하면 그런 사람들은 귀가 얇은 사람들이고, 좋게 표현하면 소통을 잘하는, 마음이 열려있는 그런 사람입니다. 신앙인들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들과의 소통 사람들과의 대화도 일차적으로 잘해야 하는 것이지만 사람들과의 소통과 대화에 앞서서 하나님 앞에 열린 사람, 하나님과 깊은 내면의 대화를 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참된 신앙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본문은 다윗의 생애를 조망하는데 있어서 아주 유명한 본문입니다. 이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소통, 하나님과의 내면의 교통을 이루어가는 이 다윗의 모습을 우리가 잘 볼 수가 있습니다.
다윗을 추격하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제보로 다윗이 엔게디 광야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죽이기 위해서 엔게디 광야까지 왔지만, 그러나 그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한 위치는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말씀에 보면 뒤를 보러 굴에 들어갔다라고 표현합니다. 이 뒤를 보러 들어갔다는 말은 발을 가리우러 들어갔다는 그런 표현인데, 정말 용변을 보러 갔다는 말이든지, 혹은 너무 더워서 잠시 쉬러 그래서 낮잠을 자러 들어갔다는 그런 두 가지 표현으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어찌되었건 사울은 다윗을 쫓다가 발을 가리우러, 뒤를 보기 위해서 한 굴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 굴은 이미 다윗이 그 굴속에 자기의 사람들과 함께 몸을 숨기고 있던 그런 굴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다윗의 사람들이 이제 이 시간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왕에게 주신 좋은 기회가 아닙니까? 우리가 저 사울을 피해서 다닌 세월이 얼마입니까? 지금 우리가 하나님께서 이 사울을 우리에게 맡긴 줄로 아오니 사울의 목을 베고 오늘 이제 이 생활을 끝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옵니다.
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다윗의 사람들이 다윗에게 이르되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넘기리니 네 생각에 좋은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날이니이다 하니 다윗이 일어나서 사울의 겉옷자락을 가만히 베니라.
다윗과 함께 생명을 걸고 이 광야 길을 다니는 사람들은, 이 시간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절호의 시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윗도 역시 어찌 사울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없었겠습니까. 그래서 다윗도 일어나서 사울의 목을 베지는 못했지만 사울의 겉옷자락을 가만히 베는 것으로 그의 마음을 대신했습니다. 그러나 정말 사울을 죽이고 싶은 다윗의 마음에 끌어 오르는 그런 마음과는 별도로, 그러나 이 순간 다윗의 내면에 말씀하시는, 다윗의 내면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이 다윗의 마음에 들려왔습니다.
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
사람들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소리에 타인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좋아합니다. 특별히 내가 듣고 싶어 하는 소리일 때 더욱더 그러합니다. 내가 이런 소리를 듣고 싶고, 내가 이런 소리에 따라 행동하고 싶은데, 누군가가 그런 이야기를 해준다면 그보다 더 좋을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의 소리가 어떠한 소리이든지 간에,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르는 소리이든, 그것이 도덕적으로 부도덕한 소리이건, 어쨌든 사람들의 소리가 내 마음의 행동에 명분을 심어주는 그런 소리라면, 그 소리를 따라가는 것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심성입니다.
오늘 다윗은, 사람들의 소리가 사람들의 그 많은 외침이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자신의 명분을 만들어 줍니다. 내가 일어나서 사람들을 격동시켜서 사울을 죽이려하지 않아도,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일어나서 다윗에게 사울을 죽이자고 끊임없이 격동하고, 다윗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직접 그 사람들을 의도하지 않고도, 사람들의 의도에 따라서 사울을 죽여도 무방한 그런 명분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에 이 다윗은 하나님의 음성에, 그 내면에서 일어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이것이 참된 신앙인의 모습으로 보여 집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은 참으로 본받아야 될 모습이지만 그러나 우리가 이런 모습을 이런 영성을 가지기에는, 우리의 내면이 우리마음 속에 속삭이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것, 우리가 믿음을 가진다고 하는 것은 바로 얼마나 잘 듣느냐 하는 것에 신앙의 성패가 달려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잘 듣느냐 우리가 잘 듣는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인데 하나님의 음성이 우리의 내면에 말씀하시고 하나님의 음성이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계신데,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음성이 잘 들려지지 않는 이유, 우리의 마음속에 어떤 상황이 딱 닥치면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나기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듣고 싶은 사람의 소리에 우리의 마음이 이미 쏠려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혹은 우리가 그 사람들에게 기대고 싶은 그런 사람들이 많이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들이 끊임없이 우리를 격동시키고, 우리로 하여금 내면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게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못하게끔, 우리 주변에 좋은 사람이건 나쁜 사람이건, 우리의 믿음이 자라나는 것을 방해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평소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가 단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입력된 하나님의 말씀이 없기 때문에, 어떤 상황이 닥칠 때, 이런 상황이 닥칠 때, 하나님의 음성이 생각나지 않는 것입니다. 평소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고 이 말씀으로 우리의 내면을 끊임없이 견고하게 하지 않을 때, 어떤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순간이 닥칠 때 세상의 방법과 사람들의 소리가 우리의 귀를 울리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다윗이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게 된 그 까닭을 우리가 잘 생각해보시고,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예배의 자리로 나온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겨서, 어떤 중요한 결정적인 상황에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끄집어내고 적용해야 될지를 생각해보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한 오늘 본문을 통해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이 다윗은 깊은 영성을 가진 그런 영성의 소유자였습니다. 5절 말씀을 함께 읽습니다. 그리한 후에 사울의 옷자락 벤 것으로 말미암아 다윗의 마음이 찔려 사람들의 격동하는 소리에 다윗의 잠시 흔들렸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울의 옷자락을 사울이 모르게 가만히 베었습니다. 그런데 그리한 후에 다윗의 마음이 심히 찔림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상처를 낸 것도 아니고 찌른 것도 아니고 죽인 것도 아닌데, 마음의 찔림을 왜 받았을까?
그러나 그의 내면을 한 번 우리가 추측해보면, 옷자락을 베는 순간 다윗의 마음에도, 정말 이 사람을 죽이고 싶다는 살의, 이 살인의 마음이 혹 생기지 않았을까? 내가 이거 옷자락만 베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이 사람을 내가 베고 싶다는 그런 마음이 왜 생기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마음이 생겼던 것조차도 다윗에게는 심한 찔림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기름 부어 세우신 사람을 내가 감히 찌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 것만으로도 내 마음은 이미 심한 찔림을 받았습니다. 그런 마음이 생겼는지 생기지 않았는지는 주변사람은 아무도 모릅니다. 오직 자기 자신만 아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만 아는 이런 불편한 마음 가운데 마음에 깊은 찔림을 받아서, 그래서 그 행동을 옮기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이 깊은 영성, 이것은 하나님 앞에 굉장히 신선한 영성입니다.
우리가 작은 죄에도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작은 죄에도 찔림을 받는다고 하는 것은 우리의 영성이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큰 죄를 짓는다할지라도, 아무리 사람을 미워하고, 아무리 내가 하나님 앞에 큰 잘못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내 마음이 무디어져 있으면, 내가 신선한 영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으면, 마음의 찔림은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주변사람들이 전혀 그 마음을 읽지 못한다 하더라도, 나는 하나님 앞에 내가 정직하지 못했던 마음을 알기 때문에, 마음에 깊은 찔림을 받았습니다.
자기 자신을 지키는 것은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이 마음의 깊은 찔림이 살인을 면하게 하는 그런 귀한 찔림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 마음에 찔림이 없다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합니다. 오늘 나의 마음에 작은 찔림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사막의 광야의 신선한 영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오늘 예배를 통해서 오늘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시는 오늘 복된 성일 하루하루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작은 찔림을 회복하시고, 그런 신선한 영성 그 영성으로 이번 한주 또 오늘 하루, 올 한 해를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복된 성일을 저희들에게 허락해주셔서 하나님 앞에 나와 와서, 귀한 이 다윗의 삶을 통해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주변에는 사람들의 말이 난무합니다. 이런 말 저런 말로 우리의 영성을 어지럽히고, 우리의 판단력을 어지럽히는 그런 말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그런 말에도 불구하고 우리 내면에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게 하여주시옵소서. 내가 아무리 듣고 싶은 말을 사람들이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내가 듣고 싶은 말을 해주시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살아가는, 그런 작고 세밀한 음성에 귀 기울이는 우리 모든 주의 복된 성도들 되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마음의 작은 찔림에도 즉시 나를 고쳐서 큰 문제를 막는 탁월한 영성을 가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작은 찔림에 귀 기울이게 하여 주시고 다른 사람들은 모른다 할지라도 나만이 아는 작은 찔림에도 스스로 겸비하며, 나의 옷깃을 여미고,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워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귀한 영성을 가진 귀한 믿음의 백성들 되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복된 성일, 첫 예배로 하나님 앞에 나왔습니다. 귀한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 우리의 심령을 아뢰고 우리의 간절한 기도제목을 가지고 나왔사오니, 하나님 아버지 함께 하여주시고,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 드리는 이 첫 예배와 첫 기도가 하나님의 보좌에 상달되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심령을 통촉하시는, 우리의 심령을 헤아려주시는 귀한 시간 되도록 인도하여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2012년 1월 29일(주일) 새벽기도회/ 사무엘상 24장 설교말씀)

 

2012년 1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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