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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4(금) 특별새벽기도회 말씀/ 주제: 주님과 동행열왕기상 18:20~40/ "갈멜산의 영적부흥"/ 설교자 : 이철신 담임목사 본문

어머니를 기리며/<새벽기도말씀>

2011-10-14(금) 특별새벽기도회 말씀/ 주제: 주님과 동행열왕기상 18:20~40/ "갈멜산의 영적부흥"/ 설교자 : 이철신 담임목사

더시스템 2022. 3. 15.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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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4(금) 특별새벽기도회 말씀/ 주제: 주님과 동행
열왕기상 18:20~40/ "갈멜산의 영적부흥"/ 설교자 : 이철신 담임목사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 (왕상 18:36~39)
운동경기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운동경기를 보면 아주 손에 땀을 쥐고 축구나 야구같이 역동적인 경기는 물론이고, 양궁은 굉장히 정적인 운동 아닙니까? 어떤 때는 좀 답답해요. 팍팍팍 쏴버리지 저렇게 한참 뜸을 들이다 하다 쏘고, 저렇게 답답하게 하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한번 쏘면 점수가 몇 점 나고 그담에 또 몇 점 나고 또 막 뒤집히고 그게 운동경기의 재미입니다 한쪽이 이기다가 또 한쪽이 이기다가 그러면서 마지막에 결론이 전혀 예상 없는 결론이 날 때 반전이 일어날 때 그럴때 그게 운동경기의 재미죠. 그래서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얘기합니다. 갈멜산의 이야기는 영적인 전쟁 영적인 대결, 영적인 게임이라고 할까요?
오늘날 우리가 볼 때는 이미 각본이 있는 드라마입니다. 결론이 뻔한 그런 드라마입니다. 그러나 그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이게 각본 없는 드라마 같이 결말을 알 수없는 손에 땀을 쥘 뿐만 아니라 자기들의 인생전체를 거는 그런 운동 경기, 영적인 대결이 바로 갈멜산 이야기입니다. 남쪽 유대가 있었고 북쪽 이스라엘이 있었는데 남쪽유대는 그래도 여러 가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하나님을 섬기면서 쭉 나갔습니다.
북쪽 이스라엘은 제대로 하나님을 섬겨본 일이 없어요. 왕위도 계속 바뀌고 또 반란이 일어나고 또 딴 사람이 일어나고 또 반란이 일어나고 딴 사람이 왕이 되고, 아합이라는 사람이 왕이 되었는데 그 아버지가 반역을 일으켜서 이전의 왕을 몰아내고 그리고는 그 사람이 왕이 되고 그 아들이 바로 아합입니다.
북이스라엘왕국의 왕에 대해서 자주하는 말이 뭔가 하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 그런 말씀입니다. 그런데 아합의 경우에는 16장 30절 말씀 보면 여호와보시기에 더욱 악을 행하였다 ‘더욱’이 하나 더 붙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 그것도 안 될 일인데 거기다 하나 더 붙여가지고 더욱 악을 행하였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뭐 볼게 없는 사람이죠. 아합은. 아합 자신이 벌써 그 뿌리가 문제가 있는 사람이고 왕이 되어서 하는 여러 가지 일도 문제가 있는데 그 한 사람만도 문제가 있는데 그 결혼해가지고 부인을 맞이했는데, 그 사람은 또 더한 사람이에요. 이세벨이라고 하는 그 이방 시돈이라는 부족국가의 왕의 딸을 데려다가 결혼을 했습니다. 왕가끼리 결혼을 한 것인데 이방여자를 데려다가 왕비를 삼았는데 그 이세벨이 또 보통 독한 사람이 아닙니다. 얼마나 잔인하고 악랄한 사람인지, 우상숭배를 얼마나 많이 하는 사람인지.
아합이 여호와보시기에 악을 행했지만 일종의 아무추어 수준이었다면 이세벨은 완전히 프로 수준입니다. 아주 체계적으로 조직적으로 오랫동안 훈련을 잘 받고 그런 식으로 우상숭배하는 일들을 아주 열심히 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전체가 그 왕이 리더가 잘못 나가니까 그 왕으로부터 시작해서 이스라엘 사람 전체가 하나님을 진노하시게 했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 이제 엘리야가 가뭄이 있을 것이다 해가지고 여러 가지 사건들이 쭉 있었죠. 가뭄이 있고 난 다음에 그 땅에 비를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셔서 그래서 엘리야가 아합왕을 만났습니다. 그 과정은 여러 가지 있는데 하여튼 아합왕을 만났어요. 아합왕한테 뭐라고 제안을 했느냐면 갈멜산에서 한번 시합을 해봅시다. 운동경기같이 영적인 시합을 한번 해봅시다. 그래서 영적인 대결, 영적전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을 제안했습니다. 갈멜산에 우상숭배하는 제사장을 전부 모으고 나하고 이렇게 전쟁을 한번 해보자. 시합을 한번 해보자 그렇게 제안을 했습니다.
갈멜산에 이제 우상의 제사장들도 모이고 엘리야도 가고 이스라엘의 백성들도 다 모였습니다. 물론 아합왕도 왔지요. 엘리야가 거기 모인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권면을 했습니다. 하나님하고 바알 사이에서 눈치보지 말고 혹은 이쪽으로 붙을까 저쪽으로 붙을까 눈치 보지 말고 혹은 양다리 걸치지 말고 하나님을 섬기든지 바알을 섬기든지 양단간에 분명하게 택일을 해라 선택을 해라 그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 중에도 신앙이 아주 미숙한 그런 사람들은 양다리 걸치는 사람들이 있다고 그럽니다. 싸악 눈치보고 이쪽이 좀 센 거 같으면 이쪽으로 붙고, 저쪽이 더 센 거 같으면 저쪽으로 붙고, 둘 중에 하나 걸리면 되니까 그런 생각으로, 점치는 데도 한번 가봤다가, 조금 좀 세긴 하지만 굿도 한번 해봤다가 뭐 이렇게 양다리 걸치는 그런 경우들이 있죠.
시골서 목회를 하다보면 그 동네사람들이 뻔하고 우리 교인들이 뻔하니까요. 그러니까 그런 양다리 걸치는 게 아주 확연하게 드러나는 경우들도 많이 있습니다. 자기가 직접 굿을 못하니까 이웃에 다른 사람 굿을 하는데 껴묻혀가지고 하는 그런 경우도 양다리를 걸치는 거죠. 이쪽이 좀 유리한거 같으면 그리붙고 저쪽이 좀유리한 거 같으면 그리 붙고 그러다 양쪽에서 다 맞으면 어떻게 합니까?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렇게 양다리를 걸쳤습니다.
하나님을 따르자니 바알이 센 것 같고 바알을 따르자니 우리조상대대로 하나님을 섬겼는데 이게 또 그리로만 붙기도 그렇고 그래서 중간에서 왔다 갔다 했습니다. 그렇게 엘리야가 하나님을 섬기든지 바알을 섬기든지 선택하라고 권면했을 때 21절 하반절 말씀을 보면 ‘백성이 한마디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되는데 완전히 떨어진 거죠. 확실하게 대답을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엘리야가 제안을 했습니다. 송아지를 갖다가 각을 뜨고 나무위에 놓고 신의 이름을 불러서 불로 응답하시는 신을 참하나님으로 정하자 그렇게 제안을 했습니다. 다 제단에다 제물 차려놓고 이렇게 불을 붙여서 불이 나는게 아니고 기도해서 불이 떨어져서 불로 응답하는 그 신을 참신으로 참하나님으로 섬기자. 그런 신이 진짜 살아있는 신이니까 그렇게 응답하는 신이 진짜 행동하는 신이니까 그 신을 우리가 참신으로 섬기자 그렇게 제안을 하니까 거기에 동의를 했습니다. 맞다. 불붙이지 않고 기도할 때 그래서 불이 떨어지는 그 신을 진짜 우리 신으로 삼고 그 신을 우리가 섬기자 그렇게 다 동의를 했습니다.
아주 민주적이죠. 사실 신앙생활은 민주적이 아닙니다. 다수결로 하는 게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열명이 아니다 그래도 내가 예수를 믿으면 믿는 거예요. 그게 신앙생활입니다. 다수를 따라 혹은 또 인기를 따라 아니에요. 또 좀 유리한 쪽을 따라 가는 게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미숙한 경우에는 어떤 현상과 증거와 기적이 나타나야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죠.
성숙한 신앙일 경우에는 그런 현상과 기적이 나타나지 아니해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의 복음을 믿고 진리를 믿고 나가는 것이 바로 신앙생활입니다. 성숙한 신앙이죠. 그런데 보십시오. 증거나 기적이 있을 때 내가 하나님을 섬기겠다 하는 것은 미숙한 신앙인데, 성숙한 신앙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내가 나가겠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나가면 그다음에 증거와 기적은 자연적으로 따라오는 겁니다. 그걸 바라보지 않고 나가도 따라오게 되어 있어요.
여러분 아이들이 먹을 거 사주고 용돈주고 그러면 하이구 사랑해요, 엄마 아버지한테는 안그러는데 할아버지, 할머니한테는 좀 그래요. 할아버지 할머니한테는 뭐나 줘야 할아버지 할머니 사랑해요 하고 와서 안기고 뽀뽀하고 아무것도 안주면 본 척도 안하고 그게 할아버지와 손주의 관계입니다. 근데 뭘 먹을거 주고 용돈 줘서 사랑하는거 하고, 그것을 바라보지 않고 사랑하는데 사랑하니까 너무 이뻐서 먹을 것도 주고 용돈 주는 거 하고 어느 쪽이 더 낫습니까? 용돈주고 먹을 거 주는게요, 안받아도 사랑한다 그러고 그러면 더 많이 갑니다. 사랑스러워서 너무 이뻐서 더 많이 가지요.
성숙한 신앙과 미숙한 신앙은 그렇습니다.. 미숙한 신앙은 현상과 증거와 기적을 봐야만 믿는 것이고 성숙한 신앙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나가는 것이고 그러나 자연히 하나님께서 넘치도록 증거와 기적을 나타내주시는 것이죠.
그러나 지금 이스라엘사람들은 너무나 미숙해가지고 증거를 보여줘야만 믿는 그런 상황입니다. 기적을 보여줘야만 믿는 그런 상황입니다. 그래서 이제 엘리야가 그렇게 제안을 한 것입니다. 야 기적이 나타나면 기적이 나타나는 신을 우리가 참신으로 하자. 그분을 참신으로 하자 섬기자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 동의를 한겁니다.
먼저 공격을 시작한 쪽이 바알의 선지자들이었습니다. 바알의 선지자들이 먼저 제사를 드렸습니다. 아침부터 하루종일 바알의 이름을 부르고 단 주위에서 뛰어놀고. 우상숭배를 하는 예배양식이 그렇습니다. 큰 소리로 신을 부르고 피가 흐르기까지 그들의 몸을 상하게 했지요. 마치 미친사람같이 광란의 예배의식을 가지는 것입니다. 피가 흐를 정도로 잔인한 의식을 가지는 것입니다. 리터지 전례, 의식 그렇게 얘기하는데 의식이 너무 잔인하지 않습니까. 보통 빈수레가 요란하다고 내용이 없을 때 그냥 막 요란합니다. 소리도 크게 지르고 요란하게 쇼도 하고 그러는 거죠. 그렇게 별일을 다했는데도 불구하고 저녁때까지 아무 응답이 없었습니다. 바알의 선지자나 이스라엘의 백성들은 다 손에 땀을 쥐고 봤을 겁니다. 하루종일 정말 불이 떨어져서 저 제물을 사를 건가 말건가 아마 그걸 쳐다보고 있었을거예요.
우리는 뻔한 겁니다. 우리가 봤을 땐 뻔해요. 엘리야는 벌써 앉아가지고 잘 놀고 있네. 되나봐라. 결말이 뻔하니까 엘리야는 그러고 있었을겁니다. 뭐 손에 땀을 쥐고 저거 혹시 불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 그런 걱정 전혀 안하고 편안하게 앉아가지고, 여기 조롱하지 않습니까. 혹시 그 신이 주무실지도 모르니까 어디 잠깐 갔을지도 모르니까 좀 더 세게 불러봐라 그러구 조롱하지 않습니까. 결말이 너무 뻔한 거죠.
결국 안돼서 다음 타자가 엘리야입니다. 무너진 제단을 수축하고 물을 채워다가 번제물과 나무위에 붓고 그 물이 흘러서 도랑에 가득 찰 정도로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증거를 보여주려면 세게 보여줘야죠. 그냥 누구나 나타날 수 있는 증거 그런 거 안보여주고 누구도 나타낼 수 없는 증거를 보여주기 위해서 아예 물까지 붓는겁니다. 불이 잘 안붙게 붓는 겁니다.
그 물을 얼마나 많이 부었는가 도랑을 파가지고 도랑까지 넘치도록 부었으니까 그냥 살살 부은 게 아니라 충분히 부었다. 정말 불이 붓기 어렵다 정말 확실한 증거를 보여준 겁니다. 간절히 하나님 앞에 간구했습니다. “하나님 응답하여 주옵소서 응답하여 주옵소서 이 백성에게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것을 알게 보여주십시오” 간절히 하나님 앞에 간구를 했습니다. 간절한 기도, 믿음의 기도가 응답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불이 내려와서 번제물도 나무도 돌도 흙도 다 태우고 도랑의 물도 말리고 완전히 강력한 불이 내려와서 분명한 증거를 나타내 보여준 것이죠.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증거를 확실 나타내 보여줬습니다. 확실한 증거를 나타내 보여주니까 그때서야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여러분 39절 말씀을 보십시오. 다같이 읽겠습니다. ‘모든 백성이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아멘)
그때서야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 제단에 제물을 드리고 그 앞에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다 모였는데 아무도 예배를 드리지 않고 쳐다만 보고 있다가, 그 제물이 불로 다 타는 것을 보고 그때서야 예배가 시작되었습니다. 모든 모인 사람들이 그때서야 예배를 참석했습니다.
저도 농촌에서 예배를 드리다보면 안에 들어와서 예배를 드리고 거기서 예배드리는 사람들을 바깥에서 보는 사람이 있어요. 뭐하나 보는 사람들이 있어요. 혹은 또 장난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문 열었다 다 쾅 닫고 도망가고 유리를 두드리고 도망가고 뭐 그런 장난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게 구경하다가 들어와서 예배에 참여하는 사람이 생기는 겁니다.
우리 교인들 중에도 간증을 이렇게 들어보면, 주일날 아내하고 아이들 데려다주고 자기는 돌아다니다가 예배 끝날 때 와서 데리고 가고 하도 그러다가 이제 너무 심심하니까 교회 마당에 와서 도대체 뭐하나 왔다갔다하다가, 그러다가 예배당 안에 들어와서 같이 예배드리는 그런 여러 가지 절차와 과정을 거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지켜보다가 구경하다가 그 다음에 예배에 참여하는 것이죠.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어떻게하나 이렇게 보다가 그다음에 예배에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그때서야 고백을 했습니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고백을 했습니다. 증거와 기적이 나타나니까 그때서야 하나님 앞에 경배하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데서부터 다시 돌아왔습니다. 이것이 부흥입니다. 다시 신앙이 살아나게 되었다. 부흥이에요. 영어로 치면 리바이벌인데, 리바이벌이 부흥이고 요즘 많이 사용하는 말이 영적인 스피리철 리바이벌, 또 스피리철 리뉴얼, 영적인 갱신 이런 용어들을 많이 사용하는데 영적으로 부흥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떨어졌다가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온 것이고 가까이 오게 된 것입니다. 영적인 부흥이 일어나게 된 것이죠.
여러분, 여러분의 신앙생활을 한번 점검을 해보시기바랍니다. 내가 주님과 얼마나 동행하고 있는가? 혹은 주님과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하는 것을 한번 점검해보십시오. 물론 여러분 가운데 아 나 예배 잘 참석하는데 무슨 새삼스럽게 점검해? 그렇게 생각하는 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신앙생활은 여러 가지 부분이 균형을 맞춰야 됩니다.
예를 들자면 첫 번째 분야는 내가 예배에 잘 참석하고 있는가? 그 예배에 참석하는 것이 주일 낮예배에 국한하고 있는가? 찬양예배나 혹은 수요기도회나 새벽기도회 거기 다 포함되어 있는가? 예배에 잘 참석하고 있는가?
두 번째 분야는 성경을 읽고 말씀을 묵상을 잘하고 있는가? 세 번째 분야는 내가 기도생활을 잘하고 있는가? 네 번째 분야는 내가 봉사를 잘하고 있는가? 다섯 번째 분야는 다른 사람을 돌보고 다른사람을 세우는 일들을 내가 잘하고 있는가? 여섯 번째 분야는 혹은 내가 복음을 전하는 일에 전도하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는가? 꾸준히 잘하고 있는가? 여러 가지 분야를 점검해볼 수 있습니다.
내가 지금 신앙이 어떤가? 영적인 상태가 어떤가 하는 것을 쭉 점검을 해불 수 있는 것입니다. 점수가 몇 점쯤 되는 것 같으세요? 따져보지 않으셨죠?
제가 쭉 몇 가지 분야를 말씀드렸습니다마는 여러분이 어떤 분야는 내가 강센데 어떤 분야는 내가 약세다. 혹은 어떤 분야는 전혀 내가 안되고 있구나? 여러분이 스스로 점검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영적인 상태라는 것은 그 전체가 다 균형 있게 잘 되어 있는 상태, 그게 영적인 상태가 좋은 것이죠. 영적인 상태가 제대로 안되어 있으면 영적인 부흥, 영적인 갱신이 필요합니다.
예배를 참석하는건 잘하고 있는데 예배를 참석해가지고 은혜를 얼마나 받고 있는가? 그냥 습관적으로 참석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것들을 좀 더 심층적으로 점검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배 참석 하고 났는데 짜증만 나가지고 오늘 그 성가대 찬양이 그게 뭐야? 짜증만 나가지고 오늘 왜 장로님 기도가 왜 그 모양이야? 불평만 남고, 오늘 목사가 거 설교준비하고 한거야 안하고 한거야 불평만 안고 돌아간다면, 예배는 참석했지만 그냥 몸만 참석한 것이지 예배에 은혜를 못받은 것입니다. 영적인 상태가 제대로 잘 안되어 있는 것이죠. 영적인 부흥이 필요합니다. 영적인 갱신이 필요하죠.
주님과 동행하기가 좀 어려운 겁니다. 그때 영적인 부흥과 갱신이 일어나야 우리 주님과 동행할 수가 있는 것이죠.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났다가 영적인 부흥이 일어나서 하나님께로 돌아와 이제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결단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훨씬 낫습니다. 그러나 내 지금 영적인 상태가 어떤가 점검해보고, 여러분 가운데 영적인 부흥이 일어나기를 바라고, 영적인 갱신이 일어나게 되기를 바라고, 우리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011년 10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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