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회계 奕

<역대기 속에서 발견되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러브스토리> 본문

어머니를 기리며/<새벽기도말씀>

<역대기 속에서 발견되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러브스토리>

더시스템 2022. 4. 13. 00:19
반응형

장순실님이 Maria Shin님과 함께 있습니다.

 
<역대기 속에서 발견되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러브스토리>
(2012. 4. 29. 새벽기도회 말씀/ 역대상 1장 말씀)
<상략>
역대기에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첫 번째는 족보인거 같습니다.
사람 이름을 쭉 나열하지 않습니까. 어디부터 나열하냐면? 아담부터 쭉 나열합니다. 아담 위는 누구예요? 하나님이죠. 신약성경에도 보면 마태복음은 예수님 족보를 아브라함부터 쭉 이렇게 나가지만 누가복음에 보면 거꾸로 올라가죠. 거꾸로 올라가는데 아브라함에서 끝날 줄 알았는데 어디까지? 아담까지. 아담에서 하나님까지... 아 우리가 하나님까지 나간다...
역대기도 똑같습니다. 족보를 나열하는데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족보 따져라 그러면 아브라함보다 자세하게 더 구체적인 조상을 따져라 그러면 이삭, 야곱 이렇게 나가겠죠. 그런데 거기서 시작 않고 아담부터 시작합니다. 그 말은 하나님부터 시작하려고 하는 의도가 굉장히 강합니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족보를 가르쳐줘야되는데 어디서부터 가르쳐 줘야 되냐? 아담부터 가르쳐줘야 되겠다. 하나님으로부터 우리가 나왔다는 것을 가르쳐줘야겠다. 그런 기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 분류를 하자면 모세오경, 예언서, 선지서, 역사서, 시가서 이렇게 분류를 하자면 역대상하는 역사서라고 분류해야 되지만 읽어보면 역사보다 더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역대기를 기록한 서기관이랄까 성경의 기록자는 역사적인거보다 영적인 것에 더 관심이 있어요. 아! 목사님, 이거 영적인 거를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는데 뭐가 더 영적입니까? 혹시 물을 분도 있을지 모르겠어요. 읽어보면 굉장히 영적이에요.
역대기의 관심은 영적회복, 영적부흥, 예배의 회복, 예배의 부흥, 거기에 굉장히 관심이 많습니다.
단적으로 우리가 1절부터 4절까지 보면 황망하죠. 읽으면, 아담, 셋, 에노스 그나마 쉼표라도 있으니까 읽어보죠. 쉼표도 없으면 답답하죠. 어디서 끊어 읽어야할지도 모를 뿐더러... 아무런 미사여구가 없어요. 아무런 사족도 없습니다. 왜 그랬을까? 왜 아담은 뭐 어떻구 어떻구 하다가, 아담은 셋을 낳았는데 뭐 첫째아들하고 둘째아들하고 어떻게 어떻게 하다가 살인이 나고 어떻게 해서 셋을 낳게 되고 이렇게 하면 조금 더 구체적 일거 같아요. 족보를 보더라도 조금 더 눈에 들어올 거 같아요. 그런데 그렇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왜 그럴까?
아마도 이 역대기를 읽는 사람들은 성경의 사전지식이 있는 사람들일 거예요. 이스라엘의 사람들 중에 이 정도만 나열을 해도 기억할 만한 사람들을 염두에 둔거 같아요. 이렇게만 해도 된다는 거죠. 알았다. 딱 보자마자.
또 한 가지는...
북이스라엘이 앗수르 제국에게 멸망당하고 그다음에 남유다왕국이 바벨론에 멸망당하고 포로로 끌려갑니다. 아마 역대기는 포로로 끌려갔을 즈음에 기록이 되었지 않았을까? 그렇게 추정도 합니다. 이 기록을 쭉 읽어보면.
왜 그랬을까?
식민지라는 건요? 포로로 끌려갔다는 건 그 나라의 존립기반이 다 무너진 겁니다. 정체성도 무너진 겁니다. 정체성이 무너졌다는 건 내가 도대체 어디서부터 왔나? 바벨론에 가보면 수많은 민족이 다 섞여 살았을 텐데...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부터 왔나?
이 질문이 평소에는 아무것도 아닌 질문 같은데 이 질문이 당시 사람들에겐 굉장히 절박한 질문일 수 있죠. 근데 거기에 대한 대답을 성경이 해주고 있는데, 이름만 아담, 셋, 에노스 이것만 알려주고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
당시에 다른 책을 만약에 본다고 했으면 전 이랬을 거 같아요.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성경도 그 많은 서기관들이 랍비들이 주석을 달아놓은 것이 굉장히 많아요. 열왕기만 읽어봐도 왕의 이야기가 굉장히 많이 있어요.
그런데 여기 사람이름 몇 글자 보면서 혹시 뭐 다른 생각이 납니까? 다른 생각이 안나요. 다른 생각이 안나요. 저는 이거 생각하면서는 하나님밖에 생각이 안났어요. 한 4,5절까지 읽으면서 하나님밖에 생각이 안나요.
뭐 쉼표 외에는 없지 않습니까?
어떻게 보면 굉장히 단순한 문장이 우리의 생각을 단순하게 만들어줍니다. 그런데 그 생각이 단순하다는 것은 아무생각이 없다 라는 것이 아니라 집중하게 만들어주죠.
우리 묵상하거나 명상하게 되면 기도의 방법이 굉장히 많습니다. 렉시오 디비나처럼 거룩한 성경읽기 그런 것도 있고, 침묵기도 이런 게 있는데, 그 중에 ‘예수 기도’라는 것도 있습니다. ‘예수기도’라는 건 예수님 이름만 부르면서 “예수님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님 응답하소서” 예수님만 부르면서 기도를 해도 집중할 수 있다는 그런 묵상의 기도방법들이 있는데, 그게 우리를 단순하게 하지만, 하나님과 나 사이에 아무런 방해물을 만들어놓지 않는다는 거예요.
다른 위대한 어떤 작가가 글을 달아놓은 건 필요 없습니다. 뭐 아담이 어떤 사람이었다, 셋은 에노스는 어떤 사람이었다. 설명도 필요 없습니다. 그냥 이름만 들으면 하나님이 생각나는 거예요. 아마 이 역대기 상하를 읽는 사람들은 그랬을 거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냥 쭉 읽어나가는 거죠.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은혜로운 이름만 나오는 게 아니에요. 8절 이하를 보면 노아의 아들중에 함의 아들 족보가 나오는데 여기 쭉 보면 구스라는 나라는 이디오피아를 말하고, 미스라임이라는 나라는 애굽을 말하고, 붓이라는 나라는 리비아를 말하는 것이고, 쭉 내려가면 블레셋까지 나오죠. 이게 이스라엘하고 맨 날 싸우던 나라예요 이게. 맨 날 치고받고 목숨 걸고 싸우던 나라입니다.
28절 이하에 보면 아예 이스마엘이 등장합니다. 이스마엘의 족보가 나오는데 이 이스마엘은 위에 나오는 노아의 족보보다도 더 구체적이구요. 그리고 이스라엘이 지금도 후회가 남는 족보가 있다 그러면 아마 이스마엘일겁니다. 왜 그렇습니까? 대부분의 아랍민족이 지금 이스마엘의 후예입니다. 지금 이스마엘 사람들도 아브라함은 좋아해요. 이스마엘의 아버지잖아요. 한 사람만 한 단계만 올라가면 이삭과 이스마엘이 형제고 같은 아버지인데, 그 한 단계를 못 올라가면 피를 흘리는 전쟁. 적대적인 그런 나라가 되는 겁니다.
지금도 화해가 가능할까? 과연? 저 이스라엘과 아랍 사이에 화해가 가능할까 의심이 되지 않습니까. 왜 그럴까?
어떤 사람이 이런 말 하더라구요? 스토리가 있는 사람들은 훌훌 털고 서로 화해할 수 있는데, 히스토리가 있는 사람들은 절대 화해 못한다, 이렇게 말하더라구요. 개인적인 관계의 어떤 여러 가지 에피소드나 스토리가 있으면 뭐 훌훌 털고 옛날 추억처럼 생각하면 그만인데, 역사적으로 아픈 과거가 있다든가 우리나라와 일본처럼. 그런 히스토리가 있으면 이거 화해하기가 힘든 겁니다. 이삭과 이스마엘 자손들은 그렇게 되어버렸습니다.
오늘날 이 신앙의 족보는 그거 히스토리 아닙니까? 신앙의 족보는 다 사람이름 나오니까 히스토린데 이스라엘 사람들하고 하나님하고 히스토리겠으니까 이거 잘 안되겠네요.
제가 좀 말을 만들어봤습니다. 이 신앙의 족보는 인간의 역사적인 기록이 아니라, 인간의 히스토리가 아니라,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러브스토리다”.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러브스토리다.” 저는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직접 내려 왔잖아요, 성육신해서 내려왔습니다. 이거 러브스토리 아닙니까? 히스토리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러브스토리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나님을 버렸던 이스라엘, 그러나 끊임없이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하나님이 외치고 품고 그들을 기다리시는 겁니다. 그게 이런 역대기를 기록하는 의미입니다, 읽는 의미입니다.
사람이름이 어렵고 발음도 복잡하지만 우리 새벽을 깨우는 성도 여러분께서는 성경의 기본베이스가 있으니까 읽으시면서 떠오르는 이름들이 있고 또 성경의 이야기들이 있을 줄 믿습니다. 그 가운데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러브스토리를 또 발견해나가시는 한주간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기를 원합니다. 늘 우리를 사랑해주시고, 우리의 삶 가운데 내려와 주셔서 우리와 동행하시며, 우리에게 더 좋은 것으로 갚아주시고 채워주시는 주님을 만나기를 원합니다.
오늘 주일에 우리교회 각 처소에서 모든 예배와 또 하나님께 드려지는 모든 사역들이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드리는 귀한 사역들이 되게 하여 주시고, 사역자들 가정 가정이 축복받는 하루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12년 4월 30일
- 어머니 故장순실 페이스북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