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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 / 주제 : 사랑의 완성 - 십자가제목:“끝까지 사랑하심” (요한복음 13:1~20절)/ 이철신 담임목사 - 1 본문

어머니를 기리며/<새벽기도말씀>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 / 주제 : 사랑의 완성 - 십자가제목:“끝까지 사랑하심” (요한복음 13:1~20절)/ 이철신 담임목사 - 1

더시스템 2022. 2. 22.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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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 / 주제 : 사랑의 완성 - 십자가
제목:“끝까지 사랑하심” (요한복음 13:1~20절)/ 이철신 담임목사 - 1
사순절기간동안에 제가 요한복음을 가지고 쭉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번 고난주간에도 요한복음을 가지고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4복음 중에서 마태, 마가, 누가 세 복음을 공관복음서라고 하는데, 같은 관점을 가지고 보는 책들이다 그래서 공관복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공관복음은 주로 펙트(Fact), 예수님께서 하신 일에 대한 사실, 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내용, 있는 그대로를 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은 사실이나 사건이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에 대한 내용들이 전체가 아니고 그것에 대해서 해석하는 이야기들이 더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을 흔히 영적인 책이라고 합니다.
고난주간에 예수님께서 무엇을 하셨는가 그 말씀도 오늘 본문말씀에 쭉 진행되고 있습니다만... 사실은 그렇게 많이 들어가지 않고요 그 사실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들 예수님의 말씀 이런 것들이 주로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오늘 이 13장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하나의 사건을 두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또 그것에 대한 해석들을 쭉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절 말씀 보시면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오늘 제가 “끝까지 사랑하심이라”는 제목을 내놨습니다마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그것이 이제 예수님사랑을 잘 표현하는 그런 단어라고 생각이 됩니다. 제한이 없이 한도가 없이 사랑하셨다 그런 말씀이죠.
우리가 상식이 있습니다. 일반사회 속에서 한국 사회에도 전체적인 사회 규범이 있고, 또 서울시나 수도권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사회규범과, 또 지방의 어느 지역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사회규범이 또 좀 다릅니다.
또 우리교회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사회 규범과 혹은 또 다른 교회 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그 교회만의 규범이 다 다르죠. 그런 상식이나 질서의 한도를 뛰어넘는 그런 사랑을 하셨다 그런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사시던 그 당시의 사회, 유대인 사회, 또 예수님과 제자들이 같이 공동생활을 해나갈 때 그 속에 있는 그 질서를 이런 것들을 예수님께서 파격적으로 뛰어넘어서 사랑하셨다 그런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제 제자들과 이별할 때가 되었습니다. 최후의 만찬입니다. 3년 동안 제자들과 같이 생활하시면서, 말씀을 가르치시고 여러 가지 행동으로 본을 보이고 이렇게 쭉 하셨는데 이제 마지막으로 좀 더 잘 가르쳐주기 위해서 그렇게 본을 보이신 것이죠. 이를테면 아주 압축해서 가르쳐주었다고 할까요? 아주 충격적인 가르침을 줬다고 할까요? 평상시엔 평범하게 가르치지만 그러나 어떤 중요한 때 문제가 있다든지 혹은 또 이렇게 마지막 때가 되어서 이별할 때가 되었다든지 그런 때는 임펙트(Impact)가 있게 좀 충격적으로 가르치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가르치시는데, 그 사랑이 무엇인가를 가르치면서 그 사랑을 아주 충격적으로 아주 깊은 인상을 주도록 그렇게 이제 가르치셨다 말씀입니다. 그렇게 본을 보였습니다. 그렇게 한 것이 바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이죠.
여러분, 제자들의 발을 씻는다는 것은 굉장히 충격적인 것입니다. 그 당시 보통 주인이 외출했다 돌아오면... 종들이 발을 씻어주는 일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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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맨발에 샌들을 신고 다녀서 발이 굉장히 지저분하죠. 발을 씻는 게 굉장히 중요하죠. 종이 자기 주인의 발을 씻어줬습니다. 그것이 일반적인 사회규범이고 질서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선생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겼다는 것이죠. 반대로 제자가 선생님의 발을 씻는 것도 사실은 일반적이 사회규범에 는 잘 안 맞습니다. 선생님과 제자의 신분격차와 주인과 종의 신분격차는 다르지 않습니까. 제자는 그냥 가르침을 받으러 온 사람이지 종은 아닙니다. 주인의 소유물이 되어서 사고 팔 수 있는 그런 재산은 아닙니다. 종은 사고파는 재산이고 또 주인이 종을 때렸다 해서 법을 어겼다 감옥에 가고 그런 일은 없습니다. 죽였을 때는 좀 문제가 되지만 그래도 죽였다고 해서 이 사람 사형 되겠다 그렇게는 안했습니다.
그러니까 주인과 종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인 신분의 격차가 굉장히 크고, 선생님과 제자가 가지고 있는 격차는 그리 큰 게 아닙니다. 그러니까 제자가 선생님의 발을 씻는 것도 사실은 굉장히 파격적인 것이죠.
그런데 거기에 더 넘어서서 선생님이 제자의 발을 씻는 것은 굉장히 파격적인, 그 당시는 있을 수 없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지금도 사실 상상을 할 수 없지요.
지금도 고난 주간의 목요일이 발을 씻어주는 날인데, 교회에서 행사로 발을 씻어준다든지 혹은 어떤 기독교기관에서 행사를 하기 위해서 발을 씻어준다든지 이런 일을 합니다만, 그러나 일반적으로 학교에서 조회시간에 종례시간에 발을 씻어준다 그런 건 없지 않습니까? 전부 학생들 운동장 다 모여서 조회하는데 누구는 무슨 상 무슨 상 받는데 오늘 누구는 발 씻어주는 상 받는다 그런 건 없죠. 그런 건 일반적인 사회규범에는 어긋나는 일입니다. 그 당시에 선생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준다는 것은 파격적인 일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사회질서를 뛰어넘는 그런 파격적인 사랑을 하신 것이죠. 끝까지 사랑하시는 게 뭐냐 일반적 상식이나 한도를 뛰어넘는 끝까지 사랑이 뭐냐? 선생님으로서 주님으로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는 것이 바로 한도를 뛰어넘는 사랑입니다.
여러분, 옛 말에 손자를 이뻐하면 손자가 할아버지 상투를 잡는다 그런 얘기를 하는데, 상투는 아무도 못 잡습니다. 아주 근엄하고 굉장히 경직되어 있는 할아버지 상투는 아무도 못 잡습니다. 할머니가 할아버지 상투 잡을 수 있습니까? 큰일 나죠. 뭐 아무도 못 잡아요. 아들이 잡을 수 있습니까? 며느리가 잡겠습니까? 아무도 못 잡는데 손자는 잡는다 말이죠. 손자가 할아버지 상투를 잡으면 어허 이놈 하지마는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뻐가지고 그러지말라 그런 정도지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상식적으로 안 맞지만 사랑하는 관계가 되면 그게 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
저는 저희 아이들이 자라날 때 기저귀를 갈아 채워주는 일도 있었구요 손주들 갈아채우는 것은 한 몇 번 있습니다마는, 저는 이제 기저귀를 갈아채우려면 먼저 심호흡을 하고 그 다음에 일단 숨을 멈춘 그 다음에 갈아 채우는데 제 아내는 심호흡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색깔이 이쁘다는 둥 뭐 이렇게 이쁘다는 둥 아니 변이 뭐 그렇게 이쁘겠어요 저는 되도록 안보고 빨리 처리하는 그런 편인데 뭐 색깔이 이쁘다는 둥 펼쳐보고 와서 보라는 둥 그걸 뭘 또 봐요?
그건 사랑의 정도가 다른 겁니다. 제가 사랑하는 사랑의 한도와 제 아내가 사랑하는 사랑의 한도가 다른 것이죠. 뭐 어느 정도 크기를 잴 수는 없는 겁니다. 사랑을 뭐 가로 몇 센티 세로 몇 센티를 재겠습니까? 그러나 분명한거는 크기가 한도가 다른 겁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한도보다 그 한도를 훨씬 뛰어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끝까지 사랑하신다는 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한도를 훨씬 뛰어넘는 그런 사랑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서로 자기 친구들끼리도 발을 씻을 수가 없고, 제일 고참의 발을 제일 신참이 씻을 수도 없는데 선생님이 제자의 발을 씻으셨다는 것은 완전히 한도를 뛰어넘는 그런 사랑을 하신 것이죠.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는데 장애물에 부딪혔습니다. 베드로가 나서가지고 내 발은 못 씻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겁니다. 원래 베드로가 좀 주제파악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고 쓸데없는 일에 나서서 설치는 사람이고, 가끔가다 좀 골치 아픈 사람 아닙니까? 주책이 많은 사람이고 그런 사람이 바로 베드롭니다. 딴 제자들은 그냥 숨이 탁 멈췄습니다.
아니 선생님이 우리 발을 씻다니 이건 전혀 예상치도 못한 상상도 못한 일이 벌어지니까 다들 말을 못하는 겁니다. 다 굳어져가지고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그런데 베드로는 그런 와중에도 앞장서서 설쳐가지고 “내 발은 못 씻습니다.”
 

- 어머니 故장순실 페이스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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