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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 (주제: 사랑의 완성 - 십자가)date : 2011.04.19(새벽기도회) 이철신 담임목사제목: “보혜사 성령” (요한복음 14:16~31) - 1 본문
어머니를 기리며/<새벽기도말씀>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 (주제: 사랑의 완성 - 십자가)date : 2011.04.19(새벽기도회) 이철신 담임목사제목: “보혜사 성령” (요한복음 14:16~31) - 1
더시스템 2022. 2. 22. 00:21반응형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 (주제: 사랑의 완성 - 십자가)
date : 2011.04.19(새벽기도회) 이철신 담임목사
제목: “보혜사 성령” (요한복음 14:16~31) - 1
마태, 마가, 누가 세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고난주간에 어떤 일을 하셨는가, 요일별로 자세히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은 고난주간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서 별로 그렇게 관심이 없었습니다. 주로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예수님께서 무얼 말씀하시고 무슨 일을 하셨는가? 거기에 가장 관심이 많아서 13장부터 17장 말씀까지는 다 이제 최후의 만찬자리에서 예수님께서 어떤 일을 하시고 혹은 말씀하시고 그런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최후의 만찬자리의 분위기가 어땠겠습니까? 목요일저녁인데, 그날 밤에 예수님께서 이제 체포가 되는 그런 저녁 식산데, 최후의 만찬이기 때문에 그 분위기가 굉장히 슬프고 우울한 분위기였을 것이다 그런 짐작을 우리가 충분히 해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제 체포되고 십자가에 죽고 떠나갈 것을 미리 예고를 하셨기 때문에 이별을 앞둔 마지막만찬이니까, 뭐 말할 수 없이 슬프고 우울한 그런 만찬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늘 여기 말씀을 보면 “근심하지 말라”고 1절에 말씀을 하시고 있습니다. 1절과 27절 말씀에 근심하지 말라고 여러 번 말씀하시는데 그 제자들 표정을 볼 때 제자들 마음을 예수님께서 보실 때 근심이 가득 찼던 하는 것을 예수님께서 보신 것이죠.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라갈 것을 공언을 하고 또 빌립은 예수님께서 아버지 집으로 가신다 그러니까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하고 요청을 하고 이 불안한 마음의 표현을 계속해서 하는 것입니다. 불안할 수밖에 없죠.
예수님께서 부르셨기 때문에 다 내버리고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어부로 고기 잡던 사람들은 자기 배와 그물과 부모도 다 내버리고 그리고 떠났습니다. 세리로 있던 사람도 세리로서 세금 받던 자리에 앉아 있다가 다 내버리고 떠났습니다. 다 그렇게 떠났는데 3년 지나서 이제 예수님께서 떠나가신다 그러니까, 그것도 뭐 아주 비참하고 아주 수치스런 방법으로 예수님께서 떠나가시니까, 제자들이 말할 수 없이 불안한거죠.
3년 동안 뭔가 그래도 좀 얻어 볼까 해서 열심히 따라다녔는데 얻는 건 하나도 없이 그냥 형편없이 되어 버리니까 얼마나 불안하겠습니까.
게다가 이제 예수님을 체포하고 죽이는 그 대제사장과 서기관 그 사람들이 예수님을 그렇게 해치면 제자들도 해치지 않을까라는 그런 두려운 마음도 또 있는 것입니다. 그런 그 불안과 두려움이 그들 가운데 가득하기 때문에 근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래 이제 최후의 만찬자리는 전체적인 분위기가 근심하는 분위기다 그런 말씀이죠.
예수님께서 그 제자들, 근심하는 제자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그 제자들에게 약속 하시는데, 이제 떠나가는 분이 무슨 약속을 하겠어요. 이제 죽는 사람이 무슨 약속을 합니까? 그냥 잘 있으라고 그냥 이렇게 하는 수밖에 없을 텐데, “서로 사랑해라” 뭐 13장부터 계속해서 장마다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계속 하시는데 마지막 부탁입니다. 마지막 부탁하고 끝내야 되는데 죽는 마당에 또 약속을 해요.
그 약속이 뭐냐면 보혜사 성령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십니다. 여러분 16절 말씀을 보십시오. 16절 다 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16절 17절에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보혜사를 아버지께 구해서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겠다 그런 말씀을 합니다. 성령에 대해서 두 가지를 오늘 말씀하는 데 보혜사라는 별명을 이야기하고 진리의 영이라는 별명을 16,17절에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6장에도 보혜사 성령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약속을 하는데 거기는 이제 진리의 영에 대해서 자세히 더 말씀하고 있습니다. 두 가지를 말씀하는 데 보혜사와 진리의 영이죠
보혜사라는 것은 도우시는 분이다 그런 뜻입니다. 헬퍼입니다. 혹은 또 우리한테 상담하고 위로하시는 분, 카운슬러다 그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번역서는 ‘친구’라는 번역을 하는 번역도 있습니다. 아주 파격적인 번역인데요.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시는데 그 성령이 어떤 분이시냐? ‘너희 친구다’. 너희 곁에서 너희와 함께 있는 친구다. 아주 친밀한 분으로, 아주 가까운 분으로 그렇게 이야기 하면서,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시겠다 그런 말씀을 하십니다.
얼마 전에 어느 수녀 한 분이 글을 썼는데 수호천사에 대해서 글을 썼어요. 저는 천주교신학을 깊이 있게 잘 모릅니다마는 몇 가지 우리와 다른 부분에 있어서 천사를 많이 강조를 해요. 물론 성경에 천사가 많이 나오죠. 구약성경에도 신약성경에도 나오고 천사가 많이 나오는데, 그 수호천사에 대해서 쭉 글을 썼는데 제가 쭉 읽으면서, 조금 우리 신교신학 하고는 잘 안 맞는다, 그런 생각을 가졌습니다. 수호천사가 있어서 그 수호천사가 우리를 이렇게 보호해준다 이제 그런 뜻인데요.
우리 신약성경에는 수호천사보다도 더 강하고 더 폭이 넓은 그런 우리 주님의 약속이 있는데 성령의 약속입니다. 성령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그런 약속이죠.
수호천사하면 항상 뭔가 이렇게 눈으로 보이는, 뭔가 이렇게 만지고 접촉할 수 있는 그런 대상을 생각합니다. 또 성경에 천사에 관한 얘기가 나오면 항상 사람의 모습으로 나오든지, 뭐 여섯 날개를 가진 모습으로 나오든지 그런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오는데 눈으로 보이는 모습으로 수호천사는 항상 나타납니다마는,
성령은 우리가 눈으로 보이는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인격적인 교제가 가능한 분으로 늘 묘사가 되고,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성령께서 함께 계심을 우리가 경험할 때마다 그분과 인격적인 친밀한 교제를 우리가 느끼게 되는 것이죠.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시고 성령께서 함께 계신다, 그런 약속을 하십니다.
그 성령의 한 별명이 보혜사이고 또 다른 별명은 진리의 영입니다. 진리의 영이라 해서 17절 말씀에 있는 대로 진리를 가르치신다 그런 말씀이죠. 우리에게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진리로서 우리를 인도하신다 그런 말씀입니다.
진리라는 것은 우리가 신앙생활하고 삶을 살아가는 데 어떤 표준, 기준을 제시해주는 것이 진리입니다. 기준이 있어야 되지 않습니까?
사람마다 전부다 자기나름대로의 양심이 있고 상식이 있는데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다 양심이 다르고 상식이 달라요.
국가에서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법이라는 걸 만들었습니다마는, 그 법을 만들고, 법을 만든 사람도, 법에 대해서 집행하는 사람도, 법에 대해서 해석하는 사람도 다 그 법의 해석이 다릅니다. 개념이 다 달라요. 기준이 분명치를 않습니다.
진리라는 것은 기준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기준!
성령께서는 진리의 영이기 때문에 그 성령께서 흔들리지 않는 기준을 우리에게 제시해주시고, 우리가 곁길로 갈 때마다, 우리가 부패하거나 타락하거나 죄 가운데 나갈 때마다 그것을 우리에게 지적하시고 책망하시고 가르치시고 우리가 바른길로 옳은 길로 가도록 그렇게 인도 하신다 그런 말씀입니다.
여러분, 성령께서 보혜사이면서 동시에 진리의 영이다. 이 두 가지를 다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늘 기억해야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마음의 평안을 누린다든지 혹은 전체적인 어떤 공동체의 평화를 누린다든지 할 때, 그 평화라는 것은 사랑과 은혜가 그 가운데 있어야 평화가 있습니다마는, 또 다른 한편으로 진리라든지 공의가 있어야 또 평화가 이루어집니다. 진리와 공의가 없이 그냥 사랑과 은혜만 가지고 평화가 이루어지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 둘이 다 겸비가 되어야 평화가 이루어지는 것이죠.
제가 북한 얘기 가끔 합니다마는 북한은 얼마나 평화롭습니까? 데모가 납니까? 뭐 얼마나 평화로워요? 그러나 평화라고 얘기합니까? 아무 일 없이 조용하기는 하지만 평화라고 이야기 하지는 않습니다. 지배층은 언제 반란이 일어나고 언제 나를 암살할지, 누가 날 총을 쏠지 독살을 할지 몰라가지고 늘 전전긍긍하고 불안한 삶을 살아가고, 피지배층은 맨 날 억눌리니까 그 마음 가운데 불안과 두려움이 가득 차 있고, 그런 상태는 평화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2011년 4월 20일
- 어머니 故장순실 페이스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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