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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사는 것이 주께 영광 돌리는 찬양과 헌신의 삶일까?> 본문

어머니를 기리며/<새벽기도말씀>

<어떻게 사는 것이 주께 영광 돌리는 찬양과 헌신의 삶일까?>

더시스템 2022. 3. 20.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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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사는 것이 주께 영광 돌리는 찬양과 헌신의 삶일까?>
이 날에 드보라와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이 노래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의 영솔자들이 영솔하였고 백성이 즐거이 헌신하였으니 여호와를 찬송하라...
여호와의 사자의 말씀에 메로스를 저주하라 너희가 거듭거듭 그 주민들을 저주할 것은 그들이 와서 여호와를 돕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도와 용사를 치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도다
겐 사람 헤벨의 아들 야엘은 다른 여인들보다 복을 받을 것이니 장막에 있는 여인들보다 더욱 복을 받을 것이로다
여호와여 주의 원수들은 다 이와 같이 망하게 하시고 주를 사랑하는 자들은 해가 힘 있게 돋음 같게 하시옵소서 하니라(사사기 4장 말씀 중에서)
아이들이 놀 때 이렇게 노는 모습이 있습니다. 무슨 말을 하면 옆에 있는 사람은 그 이야기를 다 듣지 않고 ‘반사’ 이렇게 얘기합니다.
‘반사’. 무슨 얘긴지 아십니까? 거울이 사람의 형상을 반사하듯이 듣기 싫은 말이나 길게 얘기했을 때 그냥 그대로 너 받아라 ‘반사’ 이렇게 얘기 하는 것이죠. 아이들이 ‘반사’ 라고 하면 되게 기분 나빠합니다. 열심히 얘기했더니 두 마디로 그냥 끝내버리는 그런 놀이들이 있는데...
성경에 보면 지혜롭게 바로 어떤 하나님의 사건 다음에 이렇게 하나님께, 우리는 이제 반사라고 하지만,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그런 노래들이 나옵니다. 출애굽한 다음에 모세와 미리암이 하나님께 노래를 부른 것이 여러분들 기억나실 테고, 또 마리아가 하나님께 영광 돌린 그런 노래 기억나실 것입니다.
사사기에는 어떻게 보면 뜬금없이 쭉 이스라엘의 반역과 범죄와 반복되는 그런 죄악가운데 지쳐가는, 어떻게 보면 참으로 삭막한 그런 사사기 가운데, 하나님께서 드보라와 바락의 노래를 중간에 집어넣으신 것을 보게 됩니다. 가장 오래되고 또 유명한 하나님을 향한 노래요 찬양이 하나 이제 담겨져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처럼 드보라와 바락이 참으로 지혜롭고 믿음이 있어서 하나님께, 자신들에게 향하여졌던 그 초점과 영광과 박수와 사람들의 인기와 주목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신앙이요 참지혜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그대로 자신이 흡수해서 머물게 하면 반드시 부작용이 나고 썩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께 돌려져야지,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을 만큼 그 정도로 우리 인간은 참으로 그 영광을 감당할하기 어렵다 라는 것이죠. 흔한 얘기로 그 영광을 사람이 가지고 있을 유혹이 있을 때 사람이 어떻게 되느냐면, 전기가 갑자기 많이 들어오면 과부하가 되지 않습니까? 컴퓨터도 나가고, 전기는 정전이 되듯이 사람은 하나님께 돌려져야할 영광을 자신이 가질 때 금방 타락하게 되거나 탈진하게 됩니다.
엘리야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850명과 하나님의 대결이라고 할까요? 그런 일을 한 다음에 바로 탈진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것들은 사람이 그대로 가지고 있을 만큼의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이다 라는 것이죠.
오늘 우리가 지난 4장 살펴본 것처럼, 드보라와 바락, 또 야엘이라는 여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한 사건을 보게 됩니다. 20년 동안 억압당하고 괴로움 가운데 있을 때, 즉 노래가 없어졌을 그런 시기에, 한탄과 한의 노래는 있었을지 모르지만 이와 같이 기쁜 노래는 없었던 그 시기에 드보라와 바락이, 승리를 주신 하나님께 참으로 기쁨가운데 노래하고 있는 것들을 이제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하셨다 라는 것이죠. 하나님이 하셨다.
우리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셨다’.
사도행전에도 사도들이 큰 이적과 표적을 베풀었을 때 그것들을 모르는 사람들이 사도들 앞에 무릎 꿇고 경배하려고 할 때 사도들이 옷을 찢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당신들과 똑같은 사람입니다. 우리의 경건함으로 이런 일을 이룬 것이 아닙니다 라는 것이죠.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기도를 많이 하는 거 같아서, 우리가 신령해서, 영적으로 충만해서 그와 같은 일에 쓰임 받았다라고 생각할 때가, 또 그렇게 생각되고 싶을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자기 자신도 알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 때 과감하게 바로즉시 하나님께 영광 돌릴 줄 알아야 됩니다. 초점을 하나님께 향하게 해야 된다 라는 것이죠.
그래서 사사기는 계속해서 우리가 사사에게로 초점을 맞추면 안되고 하나님께 초점을 맞춰야 됩니다. 즉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사사다’ 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사사.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와 같은 것을 까먹고, 점점 가서 (사무엘이라는 사람이 마지막 사사라고도 하고 사무엘 전까지를 사사라 하는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왕정, 사울이 등장하기 전까지를 사사기라고 보면), 사무엘에게 가서 이스라엘이 무엇을 요구하죠?
왕을 요구합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나를 버렸다고 이렇게 얘기하신 것이죠.
사사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계속해서 사람에게 집중하게 하여 더 큰 사사, 더 위대한 사사들이 와서 우리를 더 잘 살게 하고 더 잘 이끌어줘야 하므로 이제 사사들은 필요 없다. 사무엘이 있는 그 시대에는 하나님이 사사인 것은 싫고 이제 우리에게도 이방민족처럼 왕을 세워 달라 라고 얘기하게 됩니다.
그들의 초점이 이스라엘 백성들 하나님께 향하지 않고 있었다 라는 것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오늘 드보라와 바락이 어떻게 노래하게 되었습니까?
이 노래, 성경을 읽을 때나 그리고 일반적인 시나 노래들을 읽을 때는 대단히 어려운 것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 담겨져 있는 의미보다, 이것이 왜 쓰여졌는지 알지 못하면 그 시와 노래를 파악하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 시대에 가장 어떻게 보면 시대에 깨어있고 시대에 바른 소리를 내려고 했던 사람들이 종교인뿐만 아니라 시인들인데, 시인들은 그래서 어려운 시기에 많은 의미를 파악한 것들을 쓰게 됩니다. 저항시도 쓰고, 그래서 많이 잡혀가고 하는데... 글 쓰는 사람들이 왜 잡혀갈까 생각하는데, 시인이든 소설가든 잡혀가는 이유가, 그 안에 그런 사건들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그냥 읽는 사람들은 잘 모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알까요? 거기에 관련된 사람들은 다 압니다. 그리고 관련되어서 그 사람이 자신을 욕하고 반항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또 아는 것 같습니다.
이 시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사사기 4장의 사건들을 알아야 되는 것이죠. 또 이 시, 이 노래에 정말로 감격하기 위해서는, 이 시 전에 직접 전투에 참여한 사람만이 이 노래를 기쁘게 부를 수 있 라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말씀을 보면 무슨 뜻인지 확 파악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노래는 마음으로 들어가야 되는데 여기에 직접 참여해야 된다.
그래서 중간 중간 보면 드보라의 바락이 노래하면서 여호와의 전쟁에 여호와의 전투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은 복에서 제외하는 것을 보게 됍니다.
뭐 메로스를 저주하고, 어떤 지파들은, 너희들은 참여하지도 않았구나 이런 얘기들을 꼭 집어서 잠깐잠깐 하고 나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 지파들은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아무런 감흥 없을 거라구요. 왜냐하면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도 이와 같은 노래가 있고 찬양이 있는 삶, 그런 것이 있기 위해서는 반드시 노래 그 자체가 있어서는 곤란하다 라는 것이죠. 4장의 사건처럼 하나님과 함께 했던 삶이 있어야지만 우리는 노래가 나오게 되어 있고 시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삶에서 여호와를 향한 승리가 있어야지만 5장의 노래가 있을 수 있지, 5장이 달랑 나와서는 아무런 것도 의미도 고백도 아니고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장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찬송은 삶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말로는 표현이 안 되어서 노래가 된 것 아니겠습니까? 한에 사무치고 마음에 사무쳐서 노래가 나오는 것이죠. 충만하여 흘러넘쳐서 정말로 입술로 그냥 흥얼거리게 되는 것이 찬양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어떻습니까? 이제는? 그러나 거꾸로 된 것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냥 노래가 노래니까 하는 그런 사람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노래는, 찬양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찬양과 노래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서 노래하는 거지 찬양하는 것이지, 찬양이 좋아서 하나님을 믿는 것은 아닙니다.
노래와 찬양은 예배의 종이지 예배의 주가 아닙니다. 전면에 드러나면 안 됩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드러나야지, 다 종이 되어야 되는 겁니다. 드러나면 안된다 라는 것이죠.
우리의 삶에도 노래가 회복되기 위해서는 노래를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찬양을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싸워서 이기는 영적 승리의 삶이 회복이 되어야지만 노래가 나오게 됩니다. 실생활에서 아무런 영적인 싸움 없이, 갈등과 부딪힘 없이 그냥 살다가, 주일날 와서 예배 때 와서 노래하고 찬양하려니까, 그 찬양이 무슨 울림이 있고 고백이 있고 눈물이 있고 기쁨이 있겠습니까? 그냥 곡조요 가락이고 나와 상관없는 그냥 그런 얘기이죠.
그러나 실생활에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몸부림치고 때로는 실패하고 때로는 또 승리하고 하나님의 도우심 손길을 직접적으로 날마다 경험하면서 살아가는 삶은 노래할 수밖에 없고, 기도 할 수밖에 없고 그것이 자신의 일이라고 얘기할 수밖에 없다 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4절에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너희가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싸우지 아니하였다”
신자들에게 하는 얘기죠. 그러면 아무런 승리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물론 대충대충 타협하면서 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적당히 유지하면서 갈수 있을지 모르지만, 승리의 노래는 너희들과 상관없을 것이다.
드보라와 바락이 전투에 나갔을 때 많은 다른 백성들을 장막에 앉아서 편안함을 누릴 수 있었지만 그러나 이 5장의 노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족속이 되었을 것입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없다라는 것이죠. 그래서 오늘 말씀에 두 번 등장하는 것이 “즐거이 헌신한다”. “즐거이 헌신하게 하신 여호와를 찬양하라” 이렇게 나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 헌신해야만 되겠습니다. 그럼 어떤 것에 헌신해야 될까요?
신앙이 어리고 초신자일 경우에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헌신하게 되죠. 주일 성수해라, 십일조해라, 그렇게 보이는 것으로 헌신하게 되지만 신앙이 성숙하면 그렇게 얘기하지 않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해라 이런 성품으로 가게 되어서 마지막에는 오늘 31절에는 이렇게 얘기하죠.
“여호와여 주의 원수들은 다 이와 같이 망하게 하시고 주를 사랑하는 자들은 해가 힘 있게 돋음 같게 하시옵소서”(사4:31)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을 미워하게 되는 거 그게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이죠.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죠. 어떻게 사랑합니까? 마음과 뜻과 정성과 힘과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 사랑하는 것이죠. 몇 가지 해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다 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하나님 사랑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부분에 대해서 싸워야 되는 것이죠.
도대체 나는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일까?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을 위해서 헌신하는 것일까?
그 때 그 때 들리는 말씀과 또 나의 삶을 통해서 온전히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다 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정말로 사랑하십니까? 마음으로만 사랑하시면 안 됩니다. 여러분의 삶으로 손과 발로 사랑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이 이스라엘에 실패했던 광야시절을 돌이키면서 3가지를 경고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말씀을 보면 “너희는 우상숭배 말라 영적인 부문이죠. 간음하지 말라 육체적인 부문. 다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원망하지 말라 이 세 가지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났을 때 나타나는 증상, 우상숭배와 성적인 타락이 가장 대표적인 증상인데, 여기에는 다 동의 하시죠? 그런데 원망하는 일이 나옵니다. 이건 그 정도로 심각한 것일까? 원망하는 일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이, 간음이나 우상숭배와 비슷한 수준의 범죄다, 사람을 넘어뜨리게 하는 것이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들을 보게 됩니다. 그런 것들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나님을 사랑하라
묻겠습니다. 항상 기뻐하십니까? 아니잖아요? 쉬지 않고 기도하십니까? 범사에 감사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시잖아요? 거기에 싸워야하는 것이죠.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는 영적인 싸움에 오늘도 내가 처하고 있는 그 장소, 상황 속에서 싸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기고 승리하고 안 될 때 기도하고, 또 되게 해주신 것, 내가 잘나서 이긴 게 아니니까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반사하고 하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죠.
여러분 삶에 영적인 삶의 승리가 있고 그로 말미암아 5장의 이 기쁜 노래가 있는 그런 삶이 되시기를, 또 그렇지 못하면 그런 삶이 회복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주어진 영광 우리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임을 다시 한 번 고백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통해서 하나님 말씀대로 죄와 싸우고 이겨서 드보라와 바락이 불렀던 이 노래 나의 노래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노래 되게 하여 주시고 하나님, 이러한 승리노래를 부를 수 있는 영적인 삶의 승리도 우리에게 허락하시고 깨우시고 주님을 향해서 마음과 뜻과 정성과 힘과 목숨을 다해서 사랑할 수 있는 그 길로 저희를 초대하셨사오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우리의 인생을 헌신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2011. 12. 16. 금요일 새벽기도회 말씀/ 사사기 5장 말씀/ 권오성목사>
 

 

2011년 12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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