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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런 죄인이었구나 ...하나님 말씀 듣고 돌이켜 변화되는 예배자> 본문

어머니를 기리며

<내가 이런 죄인이었구나 ...하나님 말씀 듣고 돌이켜 변화되는 예배자>

더시스템 2022. 3. 26. 18:15
<내가 이런 죄인이었구나 ...
하나님 말씀 듣고 돌이켜 변화되는 예배자>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는 것을 다 완료하고 그 다음에는 사람들을 다 정비했습니다. 7장 말씀에서 봤습니다마는 그 사람들 가운데는 족보를 가지고 쭉 따져보니까, 어떤 가문은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그런 가문들이 상당수 많이 드러났고, 심지어는 지금 현재 여러 가지 직무를 감당하고 있는 제사장가문 중에도 족보에 제대로 없는 그런 가문이 드러났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가문들을 다 정리하고요, 제사장가문이 아닌 사람들도 전부다 제사장직무에서 제외시키고 그렇게 한 것을 우리가 봤습니다.
얼마 전에 우리교회에서도 신천지가 침투를 해가지고 그래서 대대적으로 정비작업을 한적이 한번 있었습니다. 교역자들이 교적부하고 신천지 명단의 사람들을 전부다 대조해서 적발된 사람들은 불러서 다 교육을 시키고 확인을 하고 그런 적이 있습니다. 공동체를 정결하게 만들기 위해서 부정하거나 잘못된 것이 들어오지 않도록, 공동체를 잘 만들기 위해서 잘못된 것들을 전부다 정비하고 제거하는 것이죠.
그 다음에 제사장 가문에도 심지어는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사람들이 거기에 들어갔다는 말씀이죠.
우리가 다른 교회를 갈 때는 그 교회가 제대로 된 교회인지 제대로 된 목사인지 살펴보고 가야되는 그런 상황에 오늘날 놓여있죠. 공동체가 부정한 여러 가지 것들이 다 들어가면 바른 공동체가 되지 못하니까요 바른 공동체 은혜로운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 그런 일들을 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 8장 말씀에는 사경회를 개최했습니다. 오늘 말씀엔 사경회라는 말이 없습니다마는 사경회라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하나하나 공부해서 은혜를 받는 것이 사경회인데 오늘 8장 말씀은 아주 유명한 사경회의 말씀이죠.
예루살렘 성을 다 완료했어요. 겉으로 보이는 건물을 다 지었어요. 그 다음에는 잘못된 사람들 다 제거하고 공동체 정비하고, 그 안에 영적인 능력이 일어나도록 영적인 부흥운동을 일으킨 겁니다.
교회에서 큰일을 하다보면 어떤 중요한 봉사나 행사를 하고 나면 너무 거기에 힘을 쏟다보니 공허해집니다. 그런데 영적으로 채우는 것인데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영적으로 그것을 채우는 것이죠.
느헤미야와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오기를 청했습니다. 아마 두루마리였으리라 생각됩니다. 그 두루마리성경을 앞에서 학사겸 제사상 에스라와 여러 사람들이 읽고 다른 사람들은 다 귀를 기울여 들었습니다. 그 백성들의 마음 가운데 갈급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포로생활을 하면서 제대로 우리가 신앙교육을 받지 못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읽지 못했는데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듣고 귀를 기울여야겠다. 하나님 말씀으로 우리 영혼을 더 풍성히 해야겠다. 우리가 영적으로 더 성장 해야겠다 하는 갈급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수문 앞 광장에 백성이 다 모였습니다. 사람이 너무 많이 모이기 때문에 성전 뜰 가지고는 다 수용이 안 되니까 더 넓은 곳에서 모이기 위해서 수문 앞 광장에 모였으리라 생각됩니다.
2절에 말씀하기를 말귀를 알아듣는 모든 사람들이 다 모였다고 말씀합니다. 남녀노소 구분 없이 말귀를 알아듣는 사람은 전부 다 모여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새벽부터 정오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장시간 동안 다 일어서서 들은 겁니다.
여러분, 수요기도회에 나올 때 어떤 기대를 가지고 나오셨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주보를 보고 느헤미야 8장을 미리 읽어보고 오신 분들도 계실 겁니다. 그런데 그거 뭐 다 아는 얘긴데 그러면 기대가 안 되는 겁니다. 저도 오늘 8장 말씀을 강의하기 위해서 다시 연구하면 하나님께서 또 새로운 은혜를 주시기 때문에 그래서 늘 기대하는 마음을 가지고 성경을 연구하게 됩니다. 느헤미야 8장 벌써 제 성경노트에 다 적혀있습니다.
그런데 또 다시 연구하면 여기 적지 않은 새로운 은혜를 또 받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늘 성경을 펼칠 때마다 기대를 가지고 성경을 펼치게 됩니다. 똑같은 본문을 설교해도 그 때 주신 은혜가 다르기 때문에, 그런데 주일날 하나님 앞에 예배할 때에든지 수요일날 예배할 때든지 기대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와서 하나님 앞에 설 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는 겁니다.
이스라엘사람들이 새벽부터 정오까지 말귀를 알아들을 사람들은 다 모여서 그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지도록 그렇게 다 와서 모여서 사경회를 시작했습니다. 학사 겸 제사장인 에스라가 주 강사였습니다. 학사겸 제사장이라는 것은 제사장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더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한 학자가 있고 그렇지 못한 분이 있는데 에스라는 대학자였습니다. 그래서 율법에 대해서 아주 전문가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제사를 집전하는 제사장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연구가 깊은 대학자였기 때문에 주강사가 되어서 하나님 말씀을 전하게 된 것입니다.
그 옛날에는 율법책이 제사장밖에 없었습니다. 두루마리로 된 것이니까 그래서 제사장이 읽으면 다른 사람들은 다 듣는 것입니다. 인쇄술의 발달로 인해서 종교개혁이 더 강하게 일어났다고 말 하는데 그래서 이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사람들에게 더 강력하게 전파가 된 거죠.
5절 말씀을 보면 제사장 에스라가 이 율법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들이 다 그 자리에서 일어섰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들려질 때 이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말씀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좀 더 존중하는 마음으로 좀 더 신중하게 받기 위해서 경의를 표하면서, 순종하겠다는 마음으로 받기 위해서 다 일어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겁니다.
6절 말씀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들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며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를 경배하니라 (아멘)
에스라가 아멘 아멘 다 일어섰을 때 사경회를 시작하는 그 초두에 에스라가 위대하신 여호와를 찬양했습니다. 어떤 곡조를 가진 찬양을 드렸는지 모르지만 하나님께 찬양하며 영광을 돌린 것입니다. 당연한 일이지요. 처음 이 집회가 시작될 때 제일 먼저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렸습니다.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 우리를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시고 이렇게 예루살렘 성을 다 완성해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의 공동체를 온전히 이루게 하신 하나님, 택한 백성이 다 흩어져있었는데 이제는 다 한 곳으로 모이고 예루살렘 성이 완성이 되어서 그 안에서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룰 수 있게 하신 그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럴 때 모든 백성들이 다 일어선 채 아닙니까. 손을 들고 아멘 아멘 거기에 동의를 했습니다. 맞습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위대하신 분,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백성 우리를 포로생활에서부터 구원하신 분입니다. 거기에 동의하고 긍정하고 찬동하면서 그 말씀을 다 받아들인 것이죠. 그리고는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하나님께 경배했습니다. 엎드려서 하나님 앞에 절하면서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여러분, 이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 다 일어서고 찬양하면서 손을 들고 찬양에 거기 같이 동참하고, 그리고는 엎드려서 절을 하며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 모든 행동들 속에 하나님에 대한 무한한 존경의 표시, 복종의 표시가 다 담겨져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는 마음의 자세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때 내가 하나님 앞에 온전히 다 드리겠다... 저는 이제 예배드리러 강대상에 올라오면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하나님, 우리 온몸과 뜻과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기 원합니다. 그게 기도의 첫마디입니다. 예배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겁니다.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는지 모릅니다마는 뭐 받아 챙겨가는 게 아니고 드리는 겁니다. 온몸을 다해서 예배를 드리고, 그 다음에 제가 드리는 기도가 하나님께서 우리가운데 임재하셔서 우리의 드리는 예배를 받아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가운데 보여주시고 은혜 베풀어주십시오 그렇게 기도합니다.
우리는 은혜 받을 생각만 하고, 뭔가 받아서 챙겨갈 생각만 하고, 드릴 생각을 안하는 겁니다. 그런데 예배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입니다.
일어설 때 손을 들어 하나님을 찬양할 때 엎드려 하나님 앞에 경배할 때 그 모든 자세는 하나님 앞에 완전히 드리는 겁니다.
뭐라고 말씀하시든 우리는 복종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가겠습니다. 그렇게 온몸으로 표시하는 것이죠.
마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태도는 어떤 때는 율법주의적인 그런 태도를 가질 수가 있죠. 그런데 일반적으로 마음이 겉으로 자세로 표현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반드시 그런 건 아닙니다마는 태도가 굉장히 불손한데 그런데 거기서 공손하게 내가 복종하겠습니다 하는 그런 걸 느낄 수 있겠습니까?
우리교회는 예배드리는 태도가 다 좋습니다. 그런데 서양의 교회들 가보면 태도가 불량한 사람들이 있어서 예배드리러 앉아 있다가 시험 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 사람 왜 저렇게 예배드리나? 어떤 사람은 의자에 쫘악 기대가지고 지금 자러왔는지 뭐하러 왔는지 태도가 마음에 안들어요. 겉으로 드러난 태도자체가 중요한건 아니지만 드러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지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 일어나서 하나님 앞에 손을 들고 엎드려 경배하고 하나님 앞에 완전히 복종하고 엎드리는 태도를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겁니다.
8절 말씀을 보십시오. 다같이 읽겠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 (아멘)
세 가지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신학에서는 성서해석학이라고 그러는데 이 8절 말씀이 하나의 규범이 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낭독하고 두 번째는 그 말씀을 해석하고 세 번째는 그 낭독한 것을 백성에게 다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었어요. 다 귀를 기울여 들었습니다. 요새는 우리가 성경을 다 많이 갖고 있다 보니까 읽는데 의존을 하고 있습니다. 읽어야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그렇습니다.
가끔가다 헌신예배 드릴 때 보면 성경 봉독하는 분이 나와 가지고 뭐 몇장 몇절 읽겠습니다 하고, 남 찾기도 전에 혼자 읽고 내려가면 기분이 좀 나쁘잖아요. 아니 대표로 나온 사람이 자기가 혼자 읽고 들어가면 어떡하나? ....
본래는 성경이 말씀 읽을 때 전체회중은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들었습니다.
구약성경에 잘 나오는 말씀 가운데 이스라엘아 들으라 하시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모세가 말씀하시고 선지자들이 말씀하면 나머지 모든 백성들은 다 들었지요. 예수님께서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다른 모든 사람들은 들었어요.
요즘은 우리가 듣는 쪽에 약해지고 읽는 쪽에 강해지다 보니까 읽는 게 강합니다마는 하나님 말씀을 들어도 우리마음의 귀를 기울여서 우리 마음을 열어놓고 그 말씀을 듣는 겁니다.
말씀을 들은 다음에는 그 다음엔 해석하는 겁니다. 말씀을 들었는데 뜻을 잘 몰라요 왜냐면 우리시대가 아닌 옛날에 기록되었기 때문에. 예수님 말씀도 이천년 전에 기록되었기 때문에 너무 시간이 멉니다. 또 이 말씀이 쓰여진 곳은 중동지방 이스라엘이기 때문에 언어 히브리어로 기록되었는데 오늘 우리는 우리말로 읽으니까 언어, 시간, 문화의 차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잘 이해하기가 어렵죠.
해석이라는 것은 언어적인 방법으로 문학적인 방법으로 역사적인 방법으로 지리적인 방법으로 동원해서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 처음에 기록될 때 무슨 뜻인지 뜻을 가르쳐주는 겁니다, 해석이라는 것은 성경이 기록된 그 당시로 가는 것이 해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 세 번째는 그 말씀을 깨닫게 했습니다. 성경을 읽고 그 당시로 돌아가서 본래 뜻이 무엇인지 해석해서 이해하고 오늘 우리에게로 돌아와서 오늘 우리가 그 말씀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고 삶속에서 적용할지 그것을 깨닫게 하는 겁니다. 옛날에 2,3천 년 전에 그랬구나 하고 그걸로 끝나버리면 뭐합니까? 그것은 성경을 이해하고 공부하는데 반밖에 못한 겁니다. 오늘 우리가 어떻게 할 거냐? 오늘 우리 시대에 이 말씀은 어떤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오느냐? 2,3천년 후에 오늘 우리시대 한국에 있는 우리에게 이것이 어떤 의미냐? 그것을 깨닫는 것이고, 어떻게 우리가 삶속에서 적용해나갈 것인지 그것을 깨닫는 것이, 깨닫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고 해석하고 깨닫고 적용하는 그런 과정들이 쭉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에스라와 여러 제사장들 다 율법에 정통한 학자들입니다. 그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낭독하고 해석하고 깨닫게 하니까 그 모인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말씀을 다 깨닫고 알았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다 깨닫고 알고 나니까 9절 말씀을 보면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왜 웁니까? 하나님 말씀이 들려졌는데 그것을 깨닫고 보니까 내가 얼마나 죄인인지 그때 깨닫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이요 다 자기 잘난 맛에 살기 때문에 자기가 괜찮은 사람은줄 알고 살아갑니다. 저도 제가 꽤 잘난 사람인지 알고 살아갑니다. 나만큼 착한 사람 있음 나와보라 그래, 어디나 기준을 두냐면 감옥에 가 있는 사람하고 비교하는 겁니다. 나만큼 정직하고 거짓말 안하는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 그래. 누구하고 비교하냐면 사기꾼하고 비교하는 거에요. 사기꾼 같은 사람도 있는데 나같은 사람 얼마나 좋으냐... 다 사람이 수준 낮은 사람과 비교해서 자기가 괜찮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수준 높은 사람하고 비교해서 내가 아직도 모자란 사람이구나 해야 되는 데, 우리 집안에서 제일 못된 사람하고 비교해서 그래서 내가 그래도 착한사람이고 이만하면 괜찮지 이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그렇게 살아왔는데, 우리 신앙과 삶의 유일한 표준이고 기준인 하나님의 말씀에 비교해보니까, 내가 얼마나 벗어났는지? 나는 하나님 앞에 불순종한 죄인이구나, 하나님 앞에 반역한 죄인이구나, 하나님께서 이렇게 살라고 그러는데 나는 너무나 벗어나 있구나. 내 생각이나 말이나 계획이나 내 말이나 내 행동이나 내 삶이나 이런 게 너무나 하나님 말씀에서 많이 벗어나 있어요. 그러니까 부끄러워지는 겁니다.
나라는 인간이 고작 이 정도인가 비참하고 슬퍼지는 것이죠. 내가 나를 봐도 슬퍼져요. 그러니까 대성통곡하면서 우는 겁니다. 그냥 눈물 주르륵 흐르는 게 아니구요, 대성통곡하는 겁니다. 내가 이런 죄인이었구나.
저는 다행히 처음 회개할 때 산에 가서 기도하다가 회개했어요.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었으니 다행이지. 밤새 가슴을 치고 땅을 치고 통곡하면서 회개했습니다. 얼마나 창피하고 부끄러운지 말이죠. 그냥 나무 밑에 바위 밑에 숨을 데 있으면 들어가서 숨고 싶은 생각, 아무도 보는 사람 없는데도 누가 다 쳐다보고 옆에서 듣는 거 같아서,
그래도 그전까지는 이정도 인간이면 괜찮지 생각했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깨달아지니까, 이렇게 내가 못된 인간이구나, 비참한 인간이구나, 비참한 죄인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된 겁니다.
말할 수 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회개하고 자기 죄를 다 자백하면, 그다음에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내 죄를 다 사해주셨다는 죄 사함의 확신을 얻게 되는 겁니다. 죄를 고백한 다음 반년쯤 있다가 죄 사함 받는 게 아닙니다. 죄를 고백하면 회개하면 그 즉시로 예수의 피가 내 죄를 씻으셨다 죄 사함의 확신을 갖게 되는 것이죠.
내가 이렇게 말할 수 없는 죄인이구나 하고 너무 부끄럽고 비참하고 너무 슬픈 생각을 가지고 눈물을 흘리는데, 바로 또 죄사함의 확신을 가지게 되니까 말할 수 없이 뛸듯이 기쁜 겁니다.
옆에서 딴사람이 보면 정신 나간 사람입니다. 그냥 눈물 흘리고 대성통곡하다가 또 좋아하지고 찬송하고 그러니까 정신 나갔지 저 사람이 저게, 뭐 이상한 사람이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산속에서 혼자 기도하다가 회개해서 다행이라는 게 그겁니다. 그런데 지금도 회개할 때 얼마나 기쁜지, 그 옆에 바위나 나무나 이런 모든 것들이 생생하게 기억이 됩니다. 그 죄사람 받은 기쁨가운데 첫 번째 본게 얼마나 이쁜지 말이죠, 얼마나 보기가 좋은지...
오늘 성경을 보면 백성들이 하나님 말씀을 다 듣고 울 때 10절 제일 끝의 말씀 보면,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느헤미야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날은 우리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그 다음에 다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여러분 회개할 때 이주 이즈 전형적인 하나의 패턴입니다 전형적인 하나의 과정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내가 깨닫죠. 내가 죄인인 것을 알게 되고 하나님 앞에 눈물을 흘리면서 회개하죠. 그러면 죄사함 받은 확신을 가지고 기쁨과 평안을 얻게 되고 그다음부터는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으로 자신감 얻고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 회개, 슬퍼하고 눈물 흘리고, 그 다음에 죄 사함의 확신 기쁨과 평안이 있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나에게 능력 주신다는 확신가지고 능력있게 자신감 있게 세상을 향해 나가는 것입니다.
너무 빨리 얘기했나요? 다 이해 됐지요. 자신감 있게 세상 가운데 나가는 것이죠. 지금 그 와 똑같은 말씀을 하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그것이 우리에게 힘이 되고 능력이 되고 그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신앙과 생활의 유일한 표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성령께서 조명해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문장실력이 있어서 하나님 말씀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 하나님 말씀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때 변화가 일어나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운동력이 있기 때문에 사람을 변화시키시는 것이죠.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서 변화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기를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말씀을 인해서 기쁨과 평안을 얻고 새로운 힘과 능력을 얻게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것을 저희들이 봤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그 옛날 느헤미야시대에만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도 변화시키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사모하는 마음으로 갈급한 심령으로 읽게 하여주시고, 성령께서 우리가운데 임재 하시고 역사하여 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는 우리가 얼마나 잘못되어 나가고 있는가를 하나님 말씀을 기준으로 해서 깨닫고 바로잡게 하여주시고, 그리고는 저희들이 바로 선 가운데 말할 수 없는 기쁨과 평안이 넘치며 하나님의 말씀에 바로 섰음으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우리가운데 함께 하시고 능력 주심으로 인해서 새로운 힘과 능력을 가지고 자신감 있게 세상가운데 삶을 살아가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12년 1월 18일 수요기도회 (느헤미야 8:1~12 강해설교말씀)

 

2012년 1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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